
대상 수상자 이진원씨
심사평
최은주 | 심사위원장, 서울시립미술관장
미술의 원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는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이 벌써 3회째를 맞았습니다. 이 미술상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켜 왔습니다. 예술창작자의 범주가 기성 예술가에만 있지 않다는 점, 예술표현의 영역이 이토록 천진하고 순수할 수 있다는 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르브뤼(원생미술이라는 뜻의 불어)의 창시자인 장 드뷔페는 “회화가 회화이기를 그치는 한계에 도달하기를 나는 좋아한다”라고 했는가 봅니다. 그의 말은 그림은 그림이면 되는 것이지 너무 장식적이거나, 설명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저 그림그리기의 기쁨과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마음과 손으로 완성해 자신의 옆에 둘 수 있다는 충족감과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을 누릴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신경다양성을 지닌 신진 예술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마련된 이 상은 위에서 언급한 미술의 원래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마다 많은 작가가 이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고 미술계에서는 누가 수상자가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사람 중에는 작업 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작업실을 마련한 작가, 팬층을 형성해 활발히 전시 활동을 전개하는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등 중요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도 생겼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번 3회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1차와 2차에 걸친 심사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총 102명 지원자의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품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1, 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때에는 회화 작품만이 출품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조각, 도자 등의 입체작품과 미디어아트 작품까지 등장해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작가들의 표현영역이 그만큼 다채로워졌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수상작을 선정하면서 최대한 공정한 심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뿐만 아니라 연관되는 작품까지 살펴보고 작가가 직접 작성한 설명글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 검토하면서 창의성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있는지도 토론하였습니다. 심사 과정을 통해 현대미술에 있어서 창작행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숙고하게 만드는 이 작가들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대상 수상자는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이백조 선생님›이라는 작품을 출품한 이진원 작가입니다. 이 작가는 주변의 인물들을 단순하고 경쾌한 형태와 색채로 그립니다. 대부분의 인물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놀라운 색채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백조 선생님 초상에는 선명하고 활기찬 색들이 거리낌없이 사용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선생님의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포착한 이 작가는 선생님의 머리를 주황색으로, 얼굴은 분홍색을 머금은 노란색으로 채색하였고 선생님이 입은 옷에는 분홍색, 보라색, 하늘색, 초록색을 마음껏 사용했습니다. 분홍색 상의에는 보라색과 초록색의 십자 모양 문양을 들어가 있어 그림을 더욱 경쾌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이 작가는 자신이 표현한 사람들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최우수상 수상자는 커다란 선인장 집 속에 오순도순 모여 있는 부엉이 가족을 그린 강다연 작가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심사위원들은 세밀화로 단련된 작가의 놀라운 세부 묘사 능력과 능수능란한 화면 질감의 연출을 보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 부엉이 가족을 감싸고 있는 안식처의 표면을 손톱 크기 단위의 표면 장식으로 일일이 쌓아 올린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전혀 다른 표현 방법을 한 화면 안에서 조화시킨 능력을 보고 심사위원들은 강 작가를 본상 수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우수상을 받은 권세진 작가는 원래 자동차와 같은 기계적 대상을 드로잉처럼 그려 주목을 받아 온 작가입니다. 얇은 펜을 사용해 지하철이나 버스의 몸체와 내부 부품을 그리고 이름까지 써놓는 작업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그렇게 그리고자 노력했던 기계의 부품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동영상을 완성하였습니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대상을 어떻게든 좀 더 생동감 있는 존재로 활성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권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권중강, 김동후, 김진수, 손제형, 송정하, 신의현, 이재영, 주혜미, 최봄이, 황성현 등 장려상 수상자들의 작품도 각각의 개성과 뛰어난 표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시회에 오셔서 아르브뤼의 세계가 제시하는 미술의 본령에 다가와 보시길 진심으로 권합니다.
김남시 | 심사위원, 이화여대 교수 겸 미술평론가
처음 참여하게 된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미술상 심사는 여러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이 미술상 공모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참여할 정도로 장애인 예술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작품 수준이 높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모든 미술상에는 그 지향점들이 있기 나름이다. “신경다양성(발달장애 등) 신진 예술가들을 발굴하는 공모전”인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의 취지에 따라 기성 미술작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하기보다는 장애 예술가들의 내면적 성향과 개성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을 선정하려 애썼다.
유화수 | 심사위원, 시각예술가 겸 장애예술활동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많은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와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1차 서류 심사 단계에서 모니터를 통해 일부 작가를 선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원자들은 대부분 신경다양성 장애(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들이었다. 장애의 유형과 특성, 그리고 장애가 작품에 발현되는 방식은 지원자마다 달랐다. 장애인의 수만큼 장애가 존재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오랜 시간 장애를 등급(1~6)으로 구분했던 시대가 새삼 무색하게 느껴졌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장애인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것과 이 작품들의 우열을 가르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서 심사에 임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많은 작업들이 서로 충돌하고 절충되며 심사가 진행되었다. 지원자의 활동 내역과 과거 작업들, 그리고 장애의 유형도 참고했으나, 공모의 특성상 출품작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작품의 완성도, 접근 방식, 다른 출품작들과의 차별성, 그리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심사의 주요 기준이 되었다.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에 출품한 신경다양성 작가의 작업은 공통으로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일종의 패턴이 보인다. 집요하고 반복적인 행위, 보통은 간과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면서 이를 점차 확장하는 방식이 그 대표적 예다.
대상 수상자인 이진원 작가 역시 이런 형식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다른 작가들과의 차별점이 있었다. 대상을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집중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해 색과 면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명쾌하면서 밀도 있게 캔버스를 조율해 나간다. 작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는 작가가 대상을 응시하고 이를 해석하고 확장해 나가는 여러 감각들을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이를 보여주었고, 앞으로 그의 작업이 어떻게 좁혀지고 넓혀질지 기대된다.
제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작
대상
이진원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이백조 선생님›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116.8×91㎝, 2024
최우수상
강다연
‹가족›
캔버스에 펜, 아크릴, 116.8×91㎝, 2024
우수상
권세진
‹Car parade on the Road›
단채널 비디오, 2분 5초, 2024
장려상
권중강
‹동물원 호랑이›
종이에 아크릴펜, 40×50㎝, 2024
장려상
김동후
‹아빠와 나›
세라믹, 33×21㎝, 2023
장려상
김진수
‹즐거운 크리스마스›
종이에 아크릴 마커, 70×52㎝, 2024
장려상
손제형
‹편하게 앉아있는 붉은 황소›
한지에 혼합재료, 116.8×80.3㎝, 2024
장려상
송정하
‹나›
우드락에 점토, 아크릴, 42×30㎝, 2024
장려상
신의현
‹무한(無限)의 세계›
장지에 채색, 116.8×91㎝, 2024
장려상
이재영
‹분홍뱀과 민들레›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46×33㎝, 2024
장려상
주혜미
‹바람 부는 날 바람개비›
종이에 색연필, 오일파스텔, 29.7×21㎝, 2024
장려상
최봄이
‹쥐똥나무›
캔버스에 아크릴, 72.7×60.6㎝, 2023
장려상
황성현
‹소중한 생명의 탄생›
캔버스에 아크릴, 72.5×91㎝, 2024